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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안전 불감증이 만든 역대 급 최악의 참사! 삼풍 백화점 건물 붕괴 사고

by Mynickname 2021.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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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백화점 설계와 개발

최근 광주광역시에서는 철거 건물의 붕괴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아직 원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지만 재하도급, 철거계획 미 준수 등이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고 합니다. 건물은 붕괴 전에 그 조짐을 알 수 있는 징조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번 사고 역시 일부 조짐이 보였으나 사고 직전까지 사고 현장 인근 도로나 인도에 대한 통제 등의 안전조치는 없었습니다.

광주 철거건물 붕괴 사고입니다.
광주 철거건물 붕괴 사고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1995년에 이 보다 훨씬 규모 큰 건물 붕괴 사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풍 백화점 붕괴 참사인데 이로 인해 502명 사망, 937명 부상, 6명이 실종되어 6.25 전쟁 이후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로 기록되었습니다.

 

 

개발로 벌어들이는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개발 과정에서의 안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오래되고 만연한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은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붕괴된 삼풍 백화점입니다.
5분만에 완전히 붕괴된 삼풍 백화점

삼풍 백화점은 최초엔 삼풍 랜드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종합상가로 설계되었지만 완공이 다가온 시점에 삼풍 회장이 백화점으로의 용도변경 및 설계변경, 5층으로 증축 등을 요구하자 당시 건설사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게 되었고 삼풍 그룹 내 건설회사가 시공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1989년 12월, 지금의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 사법연수원 바로 앞 위치에 5층 높이의 2개 동을 가진 모습으로 백화점이 개장되었습니다. 백화점의 이름은 그룹 이름을 따서 삼풍 백화점으로 명명되었고 당시 1위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였습니다. 분홍색의 건물 외관으로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초호화 쇼핑몰 콘셉트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움 명품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습니다.

붕괴 이전의 삼풍 백화점입니다.
붕괴 이전의 삼풍 백화점

삼풍 백화점의 붕괴 참사

1995년 6월 29일 오후, 삼풍백화점은 붕괴 시작 5분 만에 완전히 무너져 내려 900여 명의 쇼핑객과 백화점 직원들이 벽돌 더미에 깔려서 숨지거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붕괴 사태 이전에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는 전조 현상들이 있었는데 이미 4월부터 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 주위가 깨지는 펀칭 현상도 발생하였습니다. 붕괴 전날 밤에는 순찰 경비원이 건물에서 벽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싱크 홀처럼 바닥이 파여 있는 것 까지 목격을 하고 다음날 경영진에게 보고했으나 경영진은 고객들이 볼 수 없도록 숨기기 위해 가림 막을 치는 정도로 마무리했습니다. 6월 29일 사고 당일에도 오전에 일부 식당에서는 물이 새기 시작하고 바닥이 용기 되거나 천정이 오글오글 해져서 결국 식당 몇 개는 문을 닫았습니다. 경영진에서는 오후 2시에 모여 대책 회의를 시작했으나 매출 손실을 우려하여 당일 영업이 끝난 후에 지지대를 대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영진들은 고객들과 직원들은 대피시키지 않고 본인들은 백화점을 빠져나왔으며 마침 4층에서 보석 전을 열고 있었는데 보석 까지도 빨리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펀칭 현상입니다.
펀칭 현상

그 후 오후 5시 57분에 5층짜리 초현대식 백화점이 흔적도 없이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앙상하게 뼈대를 드러낸 사고 현장은 콘크리트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돼 버렸습니다.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는 수많은 사상자가 묻혀 있고 일부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없이 현장을 탈출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건물 전체가 순식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졌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로 생존자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고 오로지 생존자들의 목소리에만 의존하여 구조 활동을 벌일 수 밖 없어 초능력자, 역술가까지 불러 초자연적 현상에 기대어 기적을 바랐던 절박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붕괴 후 11일 후에 20대 청년이 극적으로 구조되었고 17일 후에 구조된 젊은 여성이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유가족에게 접근하여 사체발굴을 이유로 금품을 요구하는 집단도 있었고 자원봉사자로 위장하여 백화점내 물건을 절도하는 사례가 많아 구조지휘본부는 자원봉사자 등의 민간인을 모두 철수 시키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구조된 매몰자입니다.
붕괴 후 11만에 구조된 매몰자

붕괴 참사의 원인

삼풍 백화점은 한 층을 판으로 만든 다음에 여기 기둥들을 세워서 지지하고 또 다른 층을 올리는 무량판 건축 식의 구조물이었습니다. 이런 건물은 충분한 개수의 기둥이 있어야 하고 각 기둥 역시 충분히 두꺼워야 되는 것이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기둥의 개수와 두께마저도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둥 주위로 판이 뚫리는 펀칭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결국 판을 연쇄적으로 주저앉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또한 보통 식당가는 냉장고, 조리기구 등으로 다른 층과 달리 무게가 나가게 되어 지하에 두는 경우가 많지만 삼풍 백화점은 맨 위층인 5층에 식당가를 두고 바닥까지 온돌로 하여 무게를 더 가중시켰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맨 위층에 식당가를 꾸미는 순간 약 3개 층을 더 얹은 효과를 내어 4층을 버티도록 설계한 건물에 6,7,8층을 더 지은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옥상에는 에어컨을 위한 냉각탑 3개를 설치하였는데 냉각탑 자체만 무게가 37톤이고 여기에 물이 다 채워지면 80여 톤이 되어 당시 옥상의 무게가 설계된 안전 하중의 4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삼풍 백화점은 건축과정에서 불법 용도변경, 불법 증축뿐만 아니라 준공검사 과정에서도 서울시 담당 공무원이 1천만 원가량의 뇌물을 받고 현장에 나가지도 않았으면서도 20여 개가 넘는 검사 항목이 모두 이상 없다고 서류를 꾸며 단 3시간 만에 승인해 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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